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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

2012.05.21.



이제 에스토니아에 도착한 뒤, 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걱정하기 시작했던 그 순간이 왔다.

이별.

처음 에스토니아에 온 다음날 부터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. 어린 시절, 늦은 밤, 급한 일이 생겨 외출한 엄마 아빠 기다릴 때 잠이 들지 않아서, 짹깍 짹깍 시계 소리에 귀 기울여졌듯이 한참 예민해진 내 몸은 작은 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게 만들었다. 하루는 침대에 누워 저 파란 하늘이 보이는 큰 창문을 향해 내 손을 뻗어보았는데, 순간 눈물이 흘러내리더라. 내 손가락이 너무 삐쩍 마른 가지같아 보여서. 이 곳으로 오기 전, 참 많이 아팠던 그 마음이 많이 괜찮아 졌구나 이제는. 

가을이 오는 에스토니아는 파란 하늘이 예뻤고 기숙사에서 수업하러 가는 건물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다.  평화로이 사람들은 타르투 시청 앞 광장 파라솔 아래에서 식사를 하고,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.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. 그럴 수 있는 마음이 없었다. 

겨울에는 타르투 시청광장의 파스텔 빛 건물들도 우중충하게 만들어버렸던 어둠속 회색빛 에스토니아. 내가 밟고 서 있는 땅까지 구름이 잔뜩 끼어 한 달간 쉬지않고 내리는 비. 수업을 가면 그제서야 해가 떴다가 수업마치기 전에 해가 져서 근 한달은 해도 보지 못하게 만든 그 먹먹함.

이제는 어느 순간 봄이 찾아와 따뜻한 햇살과 파란 하늘, 그리고 막 자라 여린 초록잎들만 바라봐도 웃음이 난다. 입이 귀에 걸린다. 노래도 절로 나온다. 잡초도 자라고 잔디도 자란 땅에 한 가득 사람의 손으로 심겨진 씨가 아닌 자연이 뿌린 민들레 씨앗들이 싹이 트고, 하루가 다르게 자라더니 노란 꽃을 피운다. 이제 봄이구나. 돌아갈 때가 되었구나. 

오늘 한 수업에서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시작으로 이번주 시험 세 과목, 다음주 두 과목 그리고 나머지 몇 과목은 레포트 제출을 하면 에스토니아 타르투 대학에서의 생활이 모두 끝. 두 학기동안 함께 여행하고 요리해먹고, 영화보고, 웃고 장난치던 친구들과도 파르누로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면 이제 이 곳에서 두 학기동안 쌓아둔 자료들, 짐들, 정리하면 정말 끝이다.

키작은 검은 머리 검은 눈 동양인이 신기한 눈으로 사진 찍으며 뽈뽈뽈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던 것일테지만 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주는 이곳 사람들에게서도 내 아픈 마음이 빨리 쉽게 나을 수 있었던 것이지 않을까. 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친구들과, 또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그런 친구들, 선생님들. 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할까.

웃어야할까. 울어야할까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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