중학생 시절 <내 이름은 김삼순>이라는 드라마가 나왔다.
고작 열 네다섯살 중학생이 서른 살 노처녀의 마음이 뭐가 그리 공감된다고 그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르겠다.
(여주인공 김선아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속 영원한 이상형 현빈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)
<달콤한 나의 도시>를 먼저 접한 건 최강희, 지현우, 이선균이 나오던 드라마였다.
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드라마 속 여러 장면들이 책을 읽으면서 더 섬세한 묘사로 그 인물들이 이해되었다.
오은수라는 캐릭터는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어가면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만같다.
같은 여자로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감쌀 수 있을 것만 같은데,
어쩌면 나도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비슷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.
그렇다면 남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.
은수라는 캐릭터를 사랑할까, 아니면 저런 캐릭터같은 실존 인물을 만나지 않고싶어할까.
세상에 은수, 그리고 재인 같은 여자를 만나면 우리는 손가락질 하지 않을 수 있을까.
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포용할 수 있는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.
은수는 계획적으로 태오와 함께 동거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.
[단어는 내용을 규정한다. 때로는 선입견을 만들기도 한다.
동거. 그 단어는 음습한 그림자를 품고 있다.
그러나 동거에 대해 음탕하고 축축한 어떤 것을 연상하는 사람은, 동거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이다.
동거는 생활이다.
판타지가 거세된 적나라한 생활.] page 172
[태오와 지내면서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.
첫째, 같이 사는 남녀라 해도 꼭 한 침대에서 자지는 않는다는 것. (중략)
둘째, 매일 밤 '하지는' 않는 다는 것. (중략)
셋째, 내 시간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. (중략)
넷째, 화창한 주말 오후를 대청소로 보낼 수도 있다는 것.] page 172
어느 누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평범하디 평범한 한 결혼 적령기 여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.
결혼을 생각하는 남자에게도 오은수가 품는 마음에는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계산적이지만 영 이해 못할 여자의 마음도 아니다.
은수는 김영수와의 만남도 독자들에게 거짓과 가식없이 솔직하게 풀어낸다.
[나에 대한 이 남자의 마음은 어떤 빛깔일까?
'남들처럼!'을 인생의 캐치프레이즈로 높이 치켜들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.
혹시 그는 오은수라는 여자가 보유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적 조건들에 편안함을 느끼는 건 아닐까?
키 보통, 몸무게 보통, 얼굴 보통, 가슴 크기 보통, 옷 입는 센스 보통, 학벌 보통, 집안 사정 보통.
어딜 내놔도 튀지 않고 인파 속에 파묻히는 여자라는 점 때문에 안심하는 건 아닐까?
피장파장이었다. 나 역시 바로 그런 이유로 이 남자에게 호감을 품고 있으니까.] page 288
이 책이 서울대 도서관 대출 도서 2위인 책이어서 더욱 관심이 간 것도 사실이다.
아직 닥치지 않은 20대 초중반 학생들이 왜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지 알 것도 같다.
언젠가는 닥칠 내 예전 애인의 결혼식날. 나는 무얼하고 있을까.
상상하지도 못한 이런저런 일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오은수처럼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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